* 책을 읽으면서 필요한 부분에 대해 메모를 했는데 생각보다 엄청 길어졌다. 필요할 때마다 읽어볼 생각이다. 본인이 수줍음이 많다면 참고해도 좋을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다르더라도 문제의 뿌리는 하나다. 바로 자신의 수줍음에 맞서 싸우는데 실패한 것이다. 수줍음은 다른 사람과의 관계뿐만 아니라 자신의 삶 자체와의 관계 속에서 그 모습을 드러낸다.
 

 

 

 

부당하게도, 수줍음은 질병에 가깝다고 생각되어왔다. 하지만 수줍음은 인간이 가진 가장 보편적인 특징이다. 수줍은 그것이 금지된 감정으로 치부될 때 더욱 명확하게 드러나버린다. 
 
수줍음에는 온화함이 숨어있다.  따라서 수줍음과 온화함은 거의 공존한다고 할 수 있다.
 
수줍음이 온화함에서 쉽게 엇나가버리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수줍음은 전면에 드러나는 경우, 일종의 수치심의 형태를 띠게 된다. 이렇게 되면 수줍음은 온통 부정적으로 변해서 죄책감과 비슷하게 느껴진다. 
 

 


발린트의 주장은 이렇다.
이런 기본적 결함의 기원을 추적해 보면, 인간의 형성기인 생후 2년 또는 심지어 생후 몇 개월 동안 필요한 보살핌을 받지 못했던 경험에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이런  경험이 결핍 상태를 초래하는데, 이런 상태는 단지 부분적으로만 원상으로 복구할 수 있다. 개인이 꽤나 훌륭하게 적응을 하더라도, 그 사람이 겪었던 최초 경험의 흔적은 그대로 남아서 개인의 기질, 개성, 또는 성격 형성에 개입한다.
발린트는 기본적 결함의 기원을 궁극적으로 아동의 필요와 보살핌(물질적 보살핌과 심리적 보살핌) 사이의 불일치에 둔다. 즉 필요한 만큼 관심과 사랑을 받지 못했을 때 기본적 결함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이 단계에서 다른 사람과의 관계, 특히 부모와의 관계가 결정적으로 중요하다. 부모가 보여주는 태도에 따라 어린 자녀의 성격이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지 가늠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회 속에서 자신이 중요한 역할을 차지할 수 있고 그럴 만한 가치가 있다고 느끼거나, 이와는 정반대로 자신이 방치되고 있고 버림받아 마땅하다고 느끼게 된다. 청소년으로서 또는 성인으로서 경험하게 될 열등감, 자신이 부적절한 존재이고 실패자라는 느낌을 갖게 하는 메커니즘이 형성되는 때가 바로 정확히 이 시기이다.

 

아이가 부모가 원하는 것을 주지 않을 때 '부모가 자신을 사랑하지 않기 때문이다'라는 생각.

-> 엄마와 아빠가 내 필요를 채워주지 않는 것은, 내 모습이 엄마 아빠가 원하는 모습이 아니기 때문이고, 나에게 결점이 있기 때문이고, 나에게 무언가가 부족해서 내게 관심을 기울이고 싶지 않기 때문이야. (무의식적)
-> 결국 부모의 몫이었던 책임은 사라지고, 아기를 괴롭혔던 부족한 보살핌에 대한 책임은 아기 자신에게 돌아온다.
-> 스스로를 부적절한 결함이 있는 존재로 생각.

-> "원초적 결함"


 

죄책감과 수치심은 (전적으로 그렇다고 할 수는 없지만) 수줍음의 근본적인 특징이다.
 
억제된 성적 충동, 기대치만큼 유능하지 못한 데 따른 죄책감, 사랑에 대한 욕구, 이상적인 모습과 연관 지어 발생하는 부적절한 존재라는 의식, 좌절된 자아도취증 등의 요소들이 혼합되고, 이후에 사회의 엄격한 요구로 마음의 동요가 발생할 때 사람들은 수줍음을 느끼게 된다.
 
또한 수줍은 사람들은 실망을 겪을까 봐 걱정한 나머지 신중한 태도를 취하고, 다른 사람의 인정을 받을 가능성이 있는 행동에 전념하는 경향이 있다.
 
플로민, 아이젱크, 부스 같은 학자들의 이론에 따르면, 기질의 유형은 두뇌 속 화학물질에 의해 좌우될 뿐만 아니라 유전적으로 이미 결정되어 있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사람들이 고통과 불쾌함을 경험하는 원인이 바로 자신의 염색체에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수줍음은 언제나 불안정함을 야기해서 때로 자신을 마비시킬 수 있지만, 대부분의 경우는 거대한 위업을 성취하도록 부추긴다. 그러나 높은 평판과 신뢰를 만끽할 수 있을 때조차도, 수단을 가리지 않고 자신의 지위를 유지하고 발전시켜야 한다는 욕망이 점점 더 커질 수 있다. 
 
유명하든, 권력을 가졌든, 아니면 평범한 시민이든, '의외로 수줍은 사람들'은 자신의 수줍음을 들키지 않은 채 최대한 그것을 이용해서 자신의 가능성을 발전시킨 사람들이다. 

 


 


 

 


1. 예스맨

 

 

예스맨들은 무엇보다도 자신이 뭘 원하는지 밝히기 힘들어하고, "아니요"라고 말할 수 없다. 자기 의견의 정당성을 확신하지 못하기 때문에 견해를 고수하지 않거나 이를 두고 논쟁을 벌이지 않는다.

이들은 자신의 주장을 확신하는 사람과의 불쾌한 만남이 끝나고 나면, 자신의 생각을 제대로 전달하지 못했다는 점을 괴로워하는 동시에 상대방에게 나쁜 인상을 남겼을까 봐 두려워한다. (이는 분명히 수줍음을 악화시킨다.)


예스맨들은 모든 사람을 기쁘게 해주려는 이상을 추구해서, 가능한 한 많은 사람들과 사이좋은 관계를 유지하려 한다. 이런 시도가 언제나 자기부정으로 이어진다는 점을 고려해 볼 때, 이는 위험천만한 일이다.
물론 이런 상황을 피하려면 무엇보다 자신의 필요와 권리와 욕구에 최우선 순위를 두어야 한다. 그리고 비난받고 배척당할지 모른다는 자신의 불안과 두려움에 맞서야 한다.
 
절대 "아니요"라고 말하지 않는 태도는 자신의 비밀을 하나도 노출시키지 않으려는 비밀 유지의 한 방식이다. (생략) "아니요":라고 대답한다면 사람들은 그렇게 대답한 까닭을 물을 것이고, 그렇게 되면 자신의 감춰진 세계가 드러나는 상황이 조성된다. 수줍은 사람들이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려 애쓰는 것은 바로 이런 까닭에서다. 수줍은 사람들은 자신이 선호하는 것, 자신의 필요와 의견을 다른 사람에게 표현하는 것을 어려워한다.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상태에서 남에게 노출되기 때문이다.

 

 


 

 

 

2. 회피하는 사람

 

 

이 책에 따르면, 회피성 인격 장애는 자신이 부적절한 존재라 느끼고, 초기 성인기에 나타나는 부정적인 인식에 지나치게 민감하면서, 지나친 사회관계 억제가 광범위하게 나타난다. 


회피자들은 가정과 친근한 주위 환경의 보호 없이 스스로 표류한다. 이들은 수줍음이 자기 존재의 여러 측면에 스며들어가 행동의 자유와 감정의 자유를 속박하는 수준까지 다다른다. 즉 회피자들은 일종의 새장에 갇혀 있다. (생략) 정작 무의식적으로 그 새장을 지은 사람이 자신이란 사실을 인식하지 못한다. 회피자들은 자신의 가치를 심하게 떨어드리고 짓밟고 남의 눈에 띄지 않게 억눌러서, 더 이상 다른 사람 속에서 살아가기 위한 보상적인 전략도 갖추지 못한다. 회피자는 자신에게 엄청난 제한과 억제를 부과한다.


수치심을 느끼거나 놀림을 받는 것이 두려운 나머지 아주 좁고 친근한 관계 영역 이내로만 자신을 구속한다.

 

 

 

2-1. 인간 혐오자.

 

'인간 혐오자'는 가능한 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서 사회 접촉을 회피하기 시작했다. 심지어는 자유로운 휴식시간에 이뤄지는 스포츠나 정치, 여자에 대한 동료와의 대화에도 절대 끼지 않았다. 뭔가 어리석은 말을 해서 동료들의 웃음거리가 될까 봐 두려워서 자기 견해를 절대 말할 수 없었다.

 

 '인간 혐오자'와 같은 회피자들은, 자신이 부적절한 존재라는 어린 시절의 인식이 성인기에 엄습하면서 불안감을 느낀다. 이들은 세상을 멀찍이 둬야 할 필요성이 있다고 느낀다. (생략) 그들에게 세상은 비판적이고 가혹한 심판자로 가득 찬 곳이다. 회피자들은 자신이 사랑 받고 있다고 느낄 때만 껍질 밖으로 나와 자신을 열어 보일 수 있다. '인간 혐오자'에게 일어났던 현상과 마찬가지로, 문제의 상당 부분을 해결할 수 있는 강력한  치료제는 '사랑'이다. 그러나 사랑을 받아들이는 데 방해가 되는 장애물을 극복하는 것이 먼저다.
 
회피자들은 힘들겠지만, 타인의 사랑을 기꺼이 받아들일 준비를 해야 한다. 그들은 숨 쉬는 공기보다도 더욱 사랑이 필요하다. 자기 불만, 자존심의 결핍 따위에 시달리는 그들이 자신을 사랑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런데도 자신을 사랑해야 하는 것은 자신을 사랑해야 다른 사람의 사랑도 받아들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모든 사물과 모든 사람에 대해 전부 알고 싶어 한다. 그래야 어떤 사람을 만나든지, 어떤 상황에 직면하든지, 발생 가능한 온갖 위험에 대해 자신을 준비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3. 공포증을 가진 사람

 

 

공포증은 명백한 동기가 없다는 점에서 두려움과 다르다. (생략) 공포증의 인과관계를 합리적으로 설명하는 방법은 없다. 다만 그것을 유발하는 환경과 자극을 피하는 방법만 존재한다.
모든 공포증 가운데서도 소위 '사회 공포증'은 가장 치명적이고 사람을 가장 쇠약하게 만든다. 또한 ;회피성 인격 장애'의 가장 극단적인 단계이다. 사회 공포증은 수줍음이 야기하는 증상과 행동 패턴이 상당히 확대된 상태인데, 이런 공포증에 직면하면 자신을 고립시키고 칩거하는 것 외에는 자신을 구제할 수 있는 전략도 없고, 증상을 억제할 장치도 없다. 
 
* 증상
- 낯설거나 다른 사람의 인정을 받지 못하는 상황에서 경험하는 뚜렷하고 지속적인 두려움
- 두려운 사회적 상황에서 과도하고 비이성적으로 느껴지는 불안감
- 불쾌감, 불안, 잠재적으로 위협적인 상황을 피하기 위한 자신의 전략이 일상생활과 사회적 관계를 심각하게 훼손하는 경우
 
사회공포증은 암울한 기분과 알코올 남용을 동반하기 때문에 환자들의 과반수는 대부분 치료의 필요성을 크게 느끼지 않는다.

 

낯선 사람을 마주했을 때 위협적 당혹감을 느끼기 시작한 것은 그가 막 스무 살을 넘기면서였다. 그는 항상 무언가 트집을 잡거나 자신을 질책했다. 막연하고 괴로운 기분은 빠르게 확대되어 다른 사람에 대한 철저한 두려움으로 변했다. 그는 다른 사람의 인정을 받지 못할까 봐 두려웠고, 다른 사람들이 자신의 일거수일투족을 비난할지도 모른다고 느꼈다. 그는 다른 사람의 웃음거리가 되는 것이 너무나 두려워서 사람을 피하기 시작했다. 결국 그는 대학을 그만두어야 했다. (생략) '술꾼'은 같은 문제로 고통받는 다수의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두려움이 참을 수 없는 수준에 이르렀지만, 그 자체만으로는 타인에게도움을 청할 만한 것이 된다고  생각하지 못했다.

 

사회 공포증이 수줍음의 한 형태라는 점을 깨닫는다면, 이렇듯 자신의 엄청난 불안을 방치한 까닭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강한 수줍음에 시달리는 사람들은 증상이 매우 심각한 경우에도 다양한 전략을 사용해 필사적으로 문제를 숨기려 한다.
 
수줍음이라 부르는 성격적 특징이 너무나 심각한 병리 증상으로 악화되는 것은 바로 자신의 약점을 감추려 시도하기 때문이다.

 

 


 

 

 

4. 공황장애

 


수줍음의 진화 사슬을 구성하는 마지막 연결고리는 '공황장애'다. 이 위험한 현상은 우울한 기분에서 초래되는 경우가 많고, 마음과 신체 모두에 큰 영향을 미친다. 사회공포증과는 달리 증상을 다룰 때 당사자의 경험을 활용할 수 없다. 동기가 되는 사건이나 상황이 증상과 아무런 관련이 없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긴장감이 억제할 수 없이 자신을 짓누르는 가운데 가까스로 집에 돌아왔다. 아내가 집에서 가장 가까운 병원으로 그를 데리고 가서야 겨우 진정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런 증상을 겪은 데 따른 그의 공포는 계속되었다. (생략)  자주 그렇듯이 '젊은사업가'는 특정 약물 치료법에 신속하게, 거의 기적에 가까울 정도로 반응했다. 
그는 치료에 전념했지만, 불시에 자신을 기습했던 증상들을 해결할 열쇠를 찾기 위해서는 자신이 원래 가지고 있던 수줍음의 본질을 드러내야 했다.

 
그러나 가장 심각한 문제는 소위 '사전 불안'에 의해 유발되는 경우인데, 여기서 '사전 불안'이란 공황 장애를 앓는 사람이 자신의 증상이 재발할까 봐, 두려워할 만한 상황에 직면했을 때 발생하는 불안 상태를 뜻한다. 고립을 자초하고 행동의 자유를 구속하게 되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이 병리적인 상태에서, 환자는 계획과 변화에 대한 두려움을 갖게 된다. (생략) 일련의 상반된 감정을 동반하여 느끼게 된다.
 
그래서 광장은 이때 광장은 정확하게는 권력의 상징이자, 상위의 지배적인 규범을 뜻한다. (생략) 너무나 위풍당당해서 상대적으로 자신은 하찮은 존재이고, 무방비 상태에 고립되어 있다는 느낌을 갖게 하는 장소였다. 광장의 역할은 시간이 흐르면서 변했지만 여전히 사회화의 장소이다.
 
광장 공포증이 나타나는데 실질적인 광장이 있어야 할 필요는 없다. (생략) 그런 장소는 상징적인 특징을 가지며 종종 공황 발작을 수반하는 불안과 두려움을 유발한다. 
 
사회공포증에서의 두려움이 비판과 까다로운 관심에 대한 두려움인 반면, 광장 공포증에서의 두려움은 (생략) 자기 내면의 신호에 지나치게 민감해서 정신을 잃을까 두려워하거나 신체적으로 완전히 무능력해질까봐 두려워한다. 
 



 
수줍은 사람들은 수줍음이 심리적이고 신체적인 증상으로 모습을 드러내는 견디기 힘든 순간들을 겪게 된다.(생략) 그들은 자신을 감추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한다. 외출을 할 때도 자신의 진정한 정체성은 집에 남겨둔다. 
 
수줍은 사람들은 자신의 의견에 자신이 없고 정체성과 권위의식도 극히 미약하다.
그들은 자신의 결점을 묘사할 때는 과장하고, 장점을 묘사할 때는 최소화한다.
 
하지만 문제는 다른 사람의 잘못을 수줍은 사람이 대신 감내하는 겨우가 많다는 점이다. 이런 경험을 통해 그들은 자신이 부적절한 존재라고 인식하게 된다.
 
수줍음에 대처하는 방식에 따라 결과는 여러 가지로 나타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반동적이고 병적일 수도 있다. 수줍은 사람들은 사회적 필수조건이라 생각되는 자질, 즉 야심만만하고, 적극적이고, 훤칠한 외모에 날씬하고, 근육질이면서, 부자여야만 하는 조건을 인위적으로 갖추기 위해 노력할 가능성이 있다. 또는 이와 달리 그저 모든 것을 포기하면서 수줍음의 극단적 병리 현상에 빠질 가능성도 있다.


이 두 가지 길을 택하지 않은 사람들은 허세를 부리기 위한 방어용 장치를 개발하게 된다. 어차피 얼굴을 내밀어야 한다면, 자신의 진정한 얼굴 대신에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얼굴을 내밀겠다는 것이다.

 


 

 

 


  보형물  

 

 

수적으로 가장 많으면서도 가장 눈에 띄지 않고, 교묘하게 위장된 보형물이 있다. 그것은 바로 심리적 보형물이다. 때로는 착용하고 있는 사람들조차도 착용했다는 사실을 의식하지 못할 정도다. 
 

보형물은 심리적으로 치러야 할 대가다. 스트레스 정도에 따라 적절한 가격이 매겨져있다.
사용 초기에는 비용이 저렴한 것 같으나 불어난 이자가 수줍은 사람을 지치게 하고 관계에 상처를 만들어낸다.
보형물이 자신의 본래 모습과 괴리될수록 더욱 그렇다.
 
어떤 경우든 나중에 대가를 치러야 한다. 보형물은 허상이며, 아무리 잘 만들어졌다고 해도 자신의 진정한 표현방식이 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자연스럽기를 가장 어렵게 만드는 것은 바로 자연스럽고 자 하는 욕망이다."
_프랑수아 드 라로슈푸코

 

 

 
개발된 보형물은 핸드북을 사용하거나 훈련 과정을 거쳐 학습된 성향의 결과이다. 이런 보형물은 일반적 지식으로는 흥미를 끌지만 깊이가 없다. 개인 특유의 개성이 고려되지 않기 때문이다. 
= 세미나에서 가르침, 암기한 수줍음 극복 방법 열 가지, 전문가의 특별한 조언, 인터넷에서 만남 등.
 
한편 자연발생적인 보형물은, 때때로 수줍음이 이끌어내는 일종의 창조적인 충동에 좌우된다.
적절한 시기에 적절한 말을 하는 행동, 잘 하고 있다는 생각. 잠재의식.

 

인위적인 보형물로 통한 불쾌감은 무의식이라 발견하기 어렵다.

 

 


 

1. 인위적인 보형물.

 

'호색한'은 사실 이런 상황이 처음은 아니라고 말했다. 어려움에 부딪히거나, 일이나 가족의 요구에 부응하지 못할까 봐 두려울 때면 보형물이 작동하기 시작했다. 그는 자신의 관심이 되돌아오는지 알아볼 의도를 숨긴 채 다른 여성에게 관심을 돌리곤 했다. 하지만 일단 여성의 관심을 차지하고 나면 그 여성에 대한 흥미는 순식간에 사라지고, 그때부터 그의 유일한 목표는 가능한 한 신속하게 발을 빼는 것이었다. 그때 그가 하고 싶은 일이란, 결코 만족감을 느낄 수는 없지만 어느 정도 안도감을 느낄 수 있는 가정으로 돌아오는 것이었다. (생략) 보형물을 통해 느꼈던 만족감은 덧없는 것이었고 결국 불만만이 남았다. 이따금씩 자신의 가치를 증명할 만한 보형물을 찾을 필요를 느꼈지만 스스로 찾기는 불가능했다. (생략) '호색한'은 자신에 대한 여성들의 인식과 여성을 유혹하는 힘을 통해 보형물을 구축했다.

 
그는 사건의 인과관계를 명확히 인식하는 방법을 배워야 했다. 그래서 긍정적인 결과는 우연이나 행운의 산물이고 부정적인 결과는 자신의 실수와 능력 부족 때문이라는 사고방식에서 벗어나야 했다.
 
'호색한'의 경우는 수줍은 사람들이 자신의 자부심 결여에 따른 고통을 줄이거나 보상하기 위해 어떤 행동을 하는지 보여주는 좋은 사례다

 

- 건강한 보형물은 생산적이고 창의적이다.

노력하며 자신의 최상의 모습을 보여주려는 태도.
무엇보다도, 자신의 수줍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태도는 건강하다.
('의외로 수줍은 사람'들이 주로 사용하는 보형물. 진취적인 사람들.) 

- 병적인 보형물은 병적인 행동 패턴과 증상을 낳는다
=> 마약, 약물 중독. 알코올 남용, 섭식장애 등.

 

모든 형태의 보형물에는 대가가 따른다. 그 대가는 때로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크다. 어떤 경우이든, 보형물은 진정한 본질로부터 자신을 고립시키기 때문에 예외 없이 일정한 부작용을 일으킨다.

 

 


 

2. 응접실 보형물.

 

나는 '생물학자'와의 첫 상담 시간을 정했고, 그녀는 약속 시간에 딱 맞춰 도착했다. 그녀는 활달하게 웃으며 자신을 소개했고, 첫 상담에 임하는 여느 환자들보다 자신만만해 보였다. (생략) 그녀는 나를 만나러 온 까닭에 대해서는 단 한마디도 하지 않았지만, 내가 그녀의 거침없는 말 사이사이에 조심스럽게 끼어들 때면 어김없이 보호막을 치는 것으로 미루어 내용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그때마다 그녀는 정신과 의사의 상담을 요청했던 자신의 결정을 조롱하고 빈정대는 말을 몇 마디 내비쳤다. (생략) 그녀는 자신이 유쾌하고 재미있는 사람이어야 한다는 생각에 집착해서 결코 자기 모습을 남에게 보일 수 없었다. 그리고 자신의 여성스러움을 표현할 수도 없었다. 

 

그녀 자신이 강박적으로 취해온 행동과 응접실 보형물이, 결과적으로는 다른 사람에게 자신을 알리지 못하고, 자신이 가진 훌륭한 자질을 보여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선 나는 자신의 자질과 결함을 인정하지 못하는 증상을 치료하려 노력했다.
 
생물학자의 경우에서처럼 응접실 보형물은 다른 사람과 모인 자리에서의 행동 패턴에서 분명히 드러난다. 친구 집에서 저녁 시간을 함께 보낼 때, 그곳에 모인 손님 중 한 사람이 자신의 이야기를 늘어놓고 농담을 하면서 좌중을 압도하느라, 정작 다른 사람들은 그 사람에 대해 아무것도 알지 못하게 되는 상황이 종종 일어난다. 얼마 동안 사람들은 그 사람이 쾌활하고 외향적이라 생각하겠지만, 이내 지나치게 주제넘다는 느낌이 들고, 진정을 자신을 표현할 시간이나 공간을 찾지 못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 것이다.
 
이들은 수줍음을 타고, 다른 사람을 만나는 일을 두려워하고, 자신과 다른 사람의 관계가 알려질까 봐 겁을 낸다. 이런 사람들은 다른 사람의 관심을 받기는 하지만, 자신의 모습이 드러날 위험이 있는 직접적인 관련성을 회피한다. 자기 모습이 드러나는 것은 일반적으로 사소한 일이지만, 수줍은 사람들은 그것을 자신의 결함이 폭로되는 상황으로 인식된다.
 
과장과 자기도취라는 보형물 뒤에는 반드시 무언가가 숨겨져 있는 법이다.
 

 


 

3. 공격적인 논쟁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보형물.

 

 

<자기과시자>

'자기과시자'는 준수한 외모의 소유자로 언제나 옷을 잘 갖춰 입었다. 계속해서 사람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자동차로 바꾸고 (생략) 그는 20대 초반을 넘지 않는 젊고 아름다운 아가씨들만 사귀었다. 그는 술집에서 친구에게 자신이 사귀는 여자들을 보여주며 과시하는 일을 즐겼다. 그는 돈 후안처럼 자신이 사귄 아가씨들의 이름으로 기다란 목록을 작성했다. 하지만 이런 놀이에도 서서히 시들해지면서 그는 지치고 낙담했다. 자신이 왜 그런 행동을 하는지조차 더 이상 알 수가 없었다. 그는 자신이 이런 행동에 의존하고 있다고 느꼈다. 또한 사귀는 여성들이 지나치게 젊은 까닭은 자신과 다른 남성이 비교되는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생략) 그가 항상 이런 식으로 자신을 표현해왔기 때문에 그의 진정한 모습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공격적인 성향의 논쟁자들은 이런 행동을 통해 자신을 위장하려는 목적을 달성하게 된다. 그리고 다른 사람이 자기 위에 군림하지 못했다는 환상을 가진다. 이들은 자신의 생각을 이런 방식으로 타인에게 충분히 보여준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자신의 내밀한 모습을 드러내는 위험한 상황을 피할 수 있었다고 무의식적으로 확신한다.

 

그가 항상 이런 식으로 자신을 표현해왔기 때문에 그의 진정한 모습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수줍음 때문에 스스로 자신의 모습을 보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도 자신의 모습을 보일 수 없었던 것이다.
 
그는 다른 사람들을 자신에 대한 감정가로 생각했다. 다른 사람들이 그의 가치를 판단해야 했고, 그러다 보니 그 가치는 외모를 통해서만 평가될 수 있었다. 이와 같은 의존성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그는 다른 사람을 사랑하고, 자신을 사랑하는 방법을 배워야 했다. 
 
대다수 사람들에게는 열심히 일해서 소득을 얻는 것 자체가 일종의 보형물이다. 단지 돈을 많이 벌고 싶다는 욕구 때문이 아니라 (생략) 일을 통해 성취할 수 있는 역할에 집착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승진을 하고 신망과 평판을 얻는 것은 보형물을 통해 얻은 것일지라도 최소한 단기적인 안정감과 만족감을 제공한다. '의외로 수줍은 사람'과  '회피자'의 경우도 여기에 해당한다. 이런 사람에게 최대의 장애물은, 열심히 일했는데도 합당한 대우를 받지 못하는 상황이다.
 

 

<성공한 사업가>

그는 매우 주저하다가 비밀을 엄격하게 지켜줄 것을 요구한 후에, 자신의 어려움에 털어놓았다. 그는 나름대로 지위와 명성을 획득했기 때문에 두려움도, 우유부단한 태도도 사라져버린 것 같았다. 그는 자신감이 있었고, 10대일 때 또래 아이들 틈에 끼여 겪어야 했던 두려움, 즉 다른 사람으로부터 비난받거나 조롱 받을지 모른다는 두려움으로부터 자유로운 것처럼 보였다. (생략) 하지만 그가 구축한 안전한 성채는 어린 시절 친구의 초대를 계기로 크게 흔들리게 된다. (생략) 모임이 있던 당일 저녁, 자신이 궁지에 몰렸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생략) 자신감이 여지없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그날 모였던 사람들은 좋은 교육을 받았고, 너 나 할 것 없이 학위를 소유했고, 그는 입도 뻥긋할 수 없거나 감히 끼어들 수도 없는 주제에 대해 너무나 유창하게 대화를 이어갔다. 그는 자기가 마치 물 밖에 나온 물고기 같다는 느낌이 들었고, 그토록 극복하고 싶었던 불안감과 수줍음이 불현듯 한꺼번에 밀려오는 것을 느꼈다.

 
'프로그래머'는 신중하기보다는 강박관념을 갖고 있어서, 치료 과정을 꼼꼼하게 점검하고 내가 지시한 방식대로 치료 과정이 진행되고 있는지 살폈다. 그는 행동 방식을  바꿀 필요가 있었다.
 


수줍음 사람들이 개방적으로 나오는 태도들.

-> 모든 사람들이 똑같은 행동을 해도 좋은 상황에 놓였을 뿐. 같은 목적을 소유한 집단에 속한 것, 이때의 행동은 외부로부터 승인을 받고 정당화된 것. 

 

예를 들어, 축구 경기장에서 같이 응원, 처음 보는 사람들과 어떠한 계기로 술도 마시고 노는 행동은 병적인 보형물이다. (그들은 두렵고, 외로울 뿐만 아니라, 진정한 인간관계를 구축할 수 없기 때문에, 일정 정도의 공격성에 지배당한다.)

 

 

 


 

4. 미용보형물



자기 내부에서 해결될 수 없는 현상을 외부에 의탁하는 것은 현명하고 용기 있는 선택일 수 있지만, 동시에 매우 위험한 선택이기도 하다. ('의외로 수줍은 사람'또한 신체 구애받는다.) 
 
이런 보형물을 사용하는 사람을 일반화시킬 수는 없다. 다만 (신체의 완벽함을 통해) 완벽한 자아를 만들려는 목적으로 외과의사의 메스에 자기 신체를 맡기는 사람들이 상당수 존재하는 것은 사실이다.
 
IAD(인터넷 중독 장애)를 겪는 사람들은 인터넷에 대해 강박관념을 가지고 있을 수밖에 없다. 누구나 인터넷에 대해 말하고, 인터넷과 관련된 온갖 종류의 잡지나 책을 구입해서 읽음으로써 과도한 양의 자료를 입수한다. 과거에는 없었던 이 정신 의학 증후군의 가장 심각한 증상은 '진정한' 관계를 맺는 삶을 소홀히 한다는 점으로, 살아 숨 쉬는 동료와의 접촉을 멀리하게 만든다. (생략) 대화방에 들어가 다른 사람을 만나고 컴퓨터 화면 앞에 내내 앉아 있으려는 욕망 자체가 하나의 강박증이다.
 
수줍은 사람들은 자신의 정체가 드러나지 않는다고 확신할 수 있을 때라야 자신의 수줍음에 대해 말할 수 있다. 기계와 전화망에 의존해서 더 전통적인 형태의 보형물을 기술적인 보형물로 대체하는 것이다.
 
인터넷 중독자들은 알코올중독자들의 재활 그룹처럼 운영되는 가상 센터에 접촉할 수 있다. 유일한 차이점은 인터넷 중독의 경우 중독의 원인이 해독에도 사용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어쨌거나 그들은 '첨단 기술' 이라는 보형물의 중재를 통해 자유분방하게 자기 욕구를 표현했던 것이다.
 

 

 

사회가 젊은이에게 부과한 명령은 '성공'과 '성취'다.
이는 다른 사람을 누르고 승리하라는 뜻이고 지속적으로 자신의 사회적 지위를 향상시키라는 의미이다.
이는 재정적인 용어로 측정되는 성공을 뜻하고, 다양한 가면과 강박증을 동반한다.
(...생략.. ) 이런 방식으로, 성공한 사람 과실패한 사람 사이에 분명한 구별이 성립된다. 


_비토리노 안드레올리

 

 

오늘날 젊은이들 : 

-> 부모와 자식이 지나치게 장기간 함께 생활하는 경향 점차 증가.
-> 이유는 경제적인 측면.
 
오늘날 젊은이들은 상당한 수줍음을 갖고 있으며, '진짜 세상'에 진입하기 싫어한다. 그들은 요리, 세탁, 청소 그리고 무엇보다도 스스로 책임져야 하는 실질적인 필요를 대신 채워주는 부모님 집에서 편안히 지내며 보호받고 싶어 한다. 그래서 젊은이들은 자신의 감정적이고 심리적인 연약함을 보상할 대안을 찾는다. 
 
그러므로 수줍은 젊은이들의 문제는 지속적으로 증폭될 수밖에 없다. 그들에게는 미래에 대한 인식이 없고, 현재는 종종 공허하고 불확실하다. 자신이 부적절한 존재라는 내면의 감정과 거부당할지 모른다는 두려움 등이 증폭되면서 수줍음의 감정이 찾아들고, 여기에 저항하기 위해 보형물을 찾으려는 절망적인 시도가 뒤따른다.
 
젊은이들이 겪는 수줍음의 극적인 형태에는 자학도 있다. (생략) 내면의 고독과 수줍음이 극단에 이르면 삶에 대한 도전 대신에 죽음을 불사하는 충동이 느껴진다. (생략) 냉소적으로 비아냥거리며 다른 사람의 결점을 강조함으로써 자신감을 가지려 할 수도 있다. 
 
역할 모델, 기대, 욕구는 언제나 정신적 부담을 안겨주는 요인이다. 특히나 요즘은 안정적이고 연봉이 높은 '첫 직장'을 찾기가 힘들어지고 있기 때문에 젊은이들은 외로움과 소속감 결여로 고통받고 있다. 그래서 자신의 진정한 존재가치를 알지 못한 채 여러 가지 보형물을 만들고 사용한다.
 
 

 

<신경성 거식증과 병적인 과식증.>

마치 자기신체가 외부 세계를 통제하는 수단이나 되는 것처럼, 거의 정신이 나간 상태에서 감량에 또 감량을 거듭했다. 상태가 심각해지자 갑자기 부모님이 그녀에게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관심을 쏟기 시작했다. 그녀는 자신의 식습관이 방해받자 부모님의 관심에도 분노를 느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그런 관심을 반겼다. 게다가 자기 문제를 새로운 화해 거리로 삼아 부모님의 관계가 회복되는 것처럼 보였다.

 

이런 장애는 극적인 보상을 시도하는 격렬한 형태의 수줍음으로, 이들 장애의 위험성과 메시지를 파악하려면 심리학자인 매리언 크룩이 그의 저서 '바디이미지 트랩' 에서 했던 질문을 던져야 한다. (생략) 저자는 신체와 미에 대한 사회의 가치판단이 마르고자 하는 강박적인 태도를 키운다고 주장했다.  

 


 

 

수줍음은 성 문제에 있어서 훨씬 더 치명적이다. 수줍음의 여러 형태인 정숙, 수치, 죄책감, 비난 등이 도덕률과 터부라는 명목으로 부과되기 때문에 결국 기능 장애를 유발한다. 수줍음에 따른 문제는 주로 여서이 떠맡아야 하지만 문제의 특성상 남성 또한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다. 남성에 있어서 수줍음의 형태는 노출에 대해 고상한 척하는 '보수주의자'부터 '플레이보이'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이때 섹스는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과정, 혹은 자신을 입증하는 필수 요소로 기능한다. 
 
수줍은 사람 가운데는 유혹에 매우 능숙한 사람도 있다. (생략) 수줍은 사람들은 그저 유혹에 성공했다는 데 만족해한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성공을 기록하는 것뿐이다. 하지만 관계를 지속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관계를 지속하면 사이가 너무 가까워져서 수줍음이 발각되기 때문이다. 유혹하는 수준을 넘어서서, 자신이 가치 있는 존재라는 사실을 확인하는 수단으로 수줍음이 사용되기도 한다. (생략) 결국 자신의 본질이 탄로 날까 봐 두려운 것이다.
 
사회관계, 가족관계 그리고 무엇보다도 남성과 여성 사이의 심리적인 관계의 변화로 인해 오래된 남성의 원형이 쇠퇴했다. 그러면서 성행위에서 남성의 수줍음이 새롭게 부상하게 되었다. 자기 존재가치에 대한 불안이 엄습하면서, 남성은 자신이 신화에 합당하게 행동하고 있음을 증명하기 위해 주기적으로 몇 가지 방법을 모색한다. 불행하게도 폭력을 행사하는 경우도 있지만, 전통적으로 가장 널리 사용하는 방법은 자기 가치를 성적으로 표현하는 것이다. 
 
성관계의 전제는 감정의 고양과 쾌락의 교환이다.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며 사는 방법 찾기
& 현재 느끼는 불안의 원인을 찾기 위해 유아기의 기억을 여러 번 떠올리는 것.

=> 그런 후에 수줍음과 더불어 살 수 있다는 사실을 점차 깨닫기
=> 자신의 수줍음이 가진 특성 또한 인식하기

 

오르가슴을 느낄 수 없어서 치료를 받으러 오는 여성들 중에서, 쾌락 자체보다는 스스로 불완전한 존재라고 느끼는 증상을 호소하는 여성들이 많다.
 
오늘날 많은 젊은이들은 애정결핍과 삶의 길잡이가 되어줄 가치의 불안정으로 고통받는다. 부모에게서조차 적절한 역할 모델을 발견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서 자신의 성 정체성을 포함해 자기 존재의 불확실성이 증폭되곤 한다.
 
수줍은 사람들은 파트너가 보고 있는 앞에서 자신을 통제해야 하기 때문에 훨씬 더 불안감을 느낄 수 있다. 그래서 종종 보형물을 사용할 수밖에 없다. 수줍은 사람들은 삶을 공유하는 사람에게조차 자신의 약점을 공공연하게 내보이기를 두려워하는 것이다.
 

 


 

 

 

 

  부부 & 연인 관계  

 


1. 수동적 의존형

서로 파트너에게 헌신하는 사람들. 사회적 의무를 다함.
이들은 자신의 필요에 귀 기울이기보다 파트너의 눈치를 살피고 그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을지 노심초사한다. 그래서 수동적 의존형의 사람들은 흠잡을 데 없는 행동을 통해 파트너로 승인받기 위해서 가정적인 형태의 보형물을 주로 사용한다. 그 물론 그들에게는 수줍음으로 인한 일련의 희생이 따르기 마련이다. 또한 전문가의 눈으로만 감지할 수 있는 공격성을 갖고 있다.
 
2. 능동적 의존형
부지런하고 믿음직하다. 이들은 감정을 굉장히 억제하기 때문에 고통을 겪는데 그 까닭은 자신이 드러난 애정을 거부당할지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이다. 이들의 보형물은 부지런하게 움직이는 것이다. (생략) 동기는, 사명감과 같은 긍정적인 요소가 아니라 상황을 통제해야 한다는 '강박'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자기 주변에 보호막을 치는 경향이 있는데, 이런 경향은 자신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의 자유를 지나치게 제한한다. 지나치게 능동적이고 주도적인 남성, 그리고 삶의 모든 측면에서 여주인공처럼 행동하는 여성은 능동적 의존형 가능성이 높다.
 
3. 수동적 독립형
그들은 외견상 파트너에게 의존하지 않는다. 그들은 거의 갈등을 일으키지 않고, 자신이 지나치게 개입하는 일 없이 파트너가 제안하도록 맡긴다. 그래야 비난을 비껴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자신의 감정을 억제해서 독립성을 유지하고 방어하는 경향이 있다. (독립적인 공간을 고집함. 아닌척하지만 진정한 관계를 피하려는 의도.)
 
4. 능동적 독립형
이들은 용기와 포용력이 있고, 관계를 창조적으로 이끌어간다. 감정적으로 자유로워서,  개인적인 공간과 자유를 추구할 때도 파트너를 잃을 것에 대해 지나치게 두려워하는 법이 없다. (수줍음이 덜하고 불안감이 낮으나 긴장감을 가져야 할 필요가 있음.)
 

 

 

<수동적 의존형(남편) + 능동적 독립형(아내)>

능동적 독립형인 그의 아내는 사실 마음속으로는 그다지 개의치 않으면서도 남편 대신 자신이 모든 결정을 내려야 하는 것에 대해 불평했다. 자신이 결정을 내릴 때, 남편이 능동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맡는 일이 없다고 투덜거렸다. 그는 아내의 자질을 강조하면서, 아내를 믿었기 때문이었다고 자기 행동을 합리화했다. 아내는 실수하지 않을 것이고, 설사 실수를 하더라도 자신보다 훨씬 잘 대처할 것이라 주장했다. 이는 어떤 측면에서는 아내에 대한 사랑과 인정의 태도였지만, 절대 좋은 결과를 도출해낼 수 없었다. 

사실 실패한 운동선수가 방관만 하고 있었던 것은 그런 고상한 까닭 때문이 아니라 실패에 대한 엄청난 두려움 때문이었다. 승인받지 못하는 위험성을 감수하기보다는 차라리 아내가 두 사람의 삶에 대한 통제권을 갖기를 원했다. 다른 한편으로, 그가 성장한 가정은 그가 자신감을 계발할 수 있도록 북돋아 준 적이 없었다. (생략) 아내는 남편보다 훨씬 부유한 가정에서 성장했기 때문에 그런 생활방식에 익숙했다. (생략) 아내는 종종 외박을 하기도 했다. 그는 아내가 자신의 관용을 고마워해주기를 바라면서도, 아내가 다른 남성과 사랑에 빠지지 않을까 노심초사하기 시작했다. 

 

사실 능동적 독립형인 그의 아내는 바람피우는 일 따위는 생각해 본 적도 없었고, 비록 남편의 소심한 태도가 미덥진 못했지만 여전히 남편에게 커다란 애정을 갖고 있었다. 우리는 상담을 통해 두 사람이 느끼는 의사소통의 어려움을 해결하고 자기감정을 표현하기 꺼려 하는 그의 태도를 해결하는 데 오랜 시간을 들였다. 결국 그는 자신의 재정적인 우려와 직장에서의 문제점에 대해 아내에게 말할 수 있게 되었다. 

 

* 다른 커플형도 있었는데, 우리 집은 이게 맞는 거 같아서 이것만 추렸어요. 책을 찾아보시면 다양한 유형 조합이 있습니다.

 

 

 


 

* 커플 사이의 공격성

 

 

: 이때의 공격성은 명칭과 달리 공격 반응이 아닌 방어 반응이고, 학대적인 특징이 아니라 복종의 변형이다. 파트너 사이에서 발생하는 공격성은 여러 가지 형태의 불안과 갈등을 유발할 수 있다.


1. 통제하지 않으면 불가능해져서 위협적 존재가 될 파트너를 통제하기 위한 공격성.

1-1 자신의 감정의 누그러뜨리지 못하는 무능력의 표본. 어떤 건설적인 비판도 참을 수 없어한다. 자신의 관점을 일관성 없이 강요함으로써 의사소통을 차단하는 등 파괴적인 경향을 띠는 경우가 많다. 


* 공격적 행동이 반드시 물리적 폭력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주먹을 휘두루지 않아도, 크게 소리를 지르지 않아도 얼마든지 공격적이 될 수 있다. 파트너가 기대하는 것을 무시하는 등의 냉정하고 초연한 목소리만으로도 충분히 공격적일 수 있다. 성적 흥분된 파트너를 보며 회피하는 것도 마찬가지.


2. 자기 모습을 드러내기 두렵고 비난이 두려워서 공격성이 억압되는 경우
2-1 커플로서의 관계가 깨질까 봐 정당한 자기표현을 하지 못하는 형태의 공격성이다. 그들은 수줍음을 위장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공격성 또한 억제하고 위장한다.

 

 


수줍음...!
치료하기보단 소중히 다루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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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죽던 날.  (0) 2020.11.16

하나님 안녕하세요. 또 편지를 씁니다.

매번 쓸 때마다 느끼지만 전 정말 절실하지도 못하고 하나님한테 성실하지 못한 벌레입니다.

항상 회개만 해야하는 입장에서는 그냥 하나님을 외면한 죄인으로 남아 이 생만 살다가 지옥에 가는게 더 맞는 것만 같아요. 사실 저도 천국에 가고 싶습니다. 예수님이 우리의 죄를 대속해주신 것을 믿지만, 아직도 제가 제 자신을 용서하지 못하고 저의 죄에 갇혀서 더욱 어둠으로 끌려가는 지금에서는 주님 얼굴 보기가 두렵고 부끄럽고 도망가고 싶어요.

다시 시작한 SNS는 저를 더욱 외롭게 만듭니다. 게임 또한 마찬가지고요. 팔아버려야하고 끊어야 하는데 외로우면 또 그곳에 기대고 있습니다. 그곳에 기댄다고 변화된다는 것도 아니고, 술 마시는 사람들 옆에서 술만 마시는 게 전부인 이 작은 공간에서 저는 외로움을 쏟아내고 울고 있습니다. 네. 저는 또 울고 있습니다. 삶은 또 막막해지고 참을성이 없는 상태로 남아있으면서요..

 

하나님.. 제가 돈만 있었으면 어떻게 변할지 아시고 막으시는 거죠? 그런거죠? 저를 생각하시고 제게 복을 주시기 위하는 거 맞죠? 하나님. 저는 하나님이 선하신 분이라는 걸 알아요. 다 알지는 못지만 그런 분이시라고 성경에도 써있으니까, 저는 믿어요. 하지만 하나님 저는 진짜 돈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마음이 너무 가난하고 돈이 필요해요. 하나님 정말 돈이 필요해요. 저는 절박해요. 제 빚좀 어떻게 해주시면 좋겠어요. 아니면 일이라도 하고 싶어요. 하나님.. 이 공부가 제 미래에 과연 도움이 될까요? 저는 잘 모르겠어요. 집중도도 떨어지고요.

 

하나님.. 하나님이 저를 향해 보시는 모습이 너무 궁금해요. 하나님의 생각을 엿보고 싶어요. 하나님은 제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뭘 먹을지, 미래는 또 어떻게 될지 전부 다 아시잖아요. 저는 맨날 나중에 깨달아요. 그것도 갑자기요. 근데 하나님.. 저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잘 모르겠어요. 그래서 성경을 읽어야 하는데 성경이 너무 읽기 힘들어요. 자꾸만 사람들의 말에 기대고 싶어요. 하나님 그렇지만 전 돌아가고 싶어요. 성경을 읽고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하던 때가 그리워요. 돈보다 하나님 말씀에 의지하던 때가 그리워요. 나의 모든 옳은 행동들이 하늘에서 인정받고 돈도 복도 하늘에 쌓아둔다는 그 말을 믿던 때가 그리워요 하나님.

 

하나님 제가 실천할 수 있게 마음을 주세요. 그리고 제 생활에도 개입해주세요. 저는 죄인이라 이런 기도가 하늘에 닿을지 겁이 나고 또 믿음이 부족하지만 하나님 저를 사랑해주세요. 이 세상에 제가 찾을 엄마고 아빠인 분이 주님밖에 없어요. 나의 아빠도 엄마도 형제처럼 여기고 사랑하도록 생각을 주신 것도 주님이잖아요. 다만 저는 엄마 아빠인 하나님의 마음을 몰라요. 그래서 성경을 읽어야 하는데 잘 모르겠어요. 하나님이 저를 사랑하시는 것도 저는 잘 모르겠어요. 그 사랑이 매일 채워졌으면 좋겠는데 마귀가 저를 붙잡고 놓아주지 않아요. 제 마음을 사로잡았아요. 하나님 저를 붙들어주세요. 저를 사랑해주세요. 하나님의 마음을 알고 싶어요. 이 불안과 스트레스와 자살 충동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하나님 도와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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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저는 죄인입니다. 그 생각만 하면 저도 압니다. 눈물이 나요. 이유는 모르겠어요. 아마 제가 죄인이고 나는 천국을 갈 수 없을 만큼 악독한 년이라는 것을 깨달아버려서일까요. 그래서 이렇게 눈물이 날 것 같은지도 모르겠습니다.

하나님. 저는 최근에 담배를 피우기 시작했어요. 담배 아직도 피기 힘든데 두갑이나 미리 사두고 동생에게는 네가 담배 끊을 때까지 매일 한 갑씩 핀다고 얘기를 했지요. 하지만 그렇게는 할 수가 없었어요. 매일 학원에 가야 하고, 그래야 하는 하루를 버텨야 하니까. 담배를 피울 여유도 없었고 그럴 친구도 없었어요.

여기 남자애들은 다 친해요. 대부분은 서로 말을 놓고 있죠. 저도 그러고 싶은데 용기가 나질 않아요. 편하게 묻고 알고 싶고 질문도 하고 싶은데 그냥 껄끄럽고 힘들어요. 이런 제가 너무 멍청해 보이죠. 저도 이런 제가 싫습니다.

저는 로또를 사는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했어요. 만 원이나 주고 사는 그들이 멍청해 보였어요. 하지만 이제는 저도 삽니다. 네. 최근에 저는 로또를 또 샀습니다. 만 원어치나요. 저는 절실히 돈이 필요해요. 물론 재미로 사는 사람도 있고, 저보다 절박한 사람도 있고, 그냥 습관처럼 사는 사람도 있고 여러 사람들이 다 섞여있겠죠. 하지만 주님. 전 진짜 돈이 필요해요. 전 당신이 제게 500억이라는 돈을 허락해 주셨으면 좋겠어요. 만약 돈을 받게 된다면 은행에 넣어두고 불릴 생각만 하진 않을 거예요. 힘든 사람들에게도 쓰고,노후 자금도 마련 좀 하고, 필라테스도 끊고, 우리 엄마 아빠 행복하게 그리고 주변 지인들 빚도 갚아주는 그런 사람 되고 싶어요. 그리고 제일 어렵고 힘든 사람들도 도와주고 싶고요. 이런 제게 그런 돈을 허락해 주시면 안 될까요? 전 진짜 500억이 있으면 좋겠어요. 단돈 5억이라도요.

요즘은 아빠가 가지고 있는 아파트값이 올라가는 것을 보면서 5억이라는 돈도 그렇게 크게 느껴지지가 않아요. 500억은 있어야 미래가 보장될 것만 같고 앞으로의 두려움도 조금은 내려놓고 살 수 있을 거라 생각해요. 물론 저는 돈 때문에 영혼을 팔진 않을게요. 최근에 엄마 앞에서 대놓고 거짓말하고 게임 이긴척하려고 했던 건 소소한 거니까 좀 봐주세요. 그렇지만 하나님 배신해야 돈을 준다면 그런 돈은 받지 않을게요. 하나님 믿지 말라면서 500억 준다고 하면, 그런 돈은 받지 않을게요. 하지만 하나님 전 진짜 절박해요. 제 빚이 너무 많아요. 주님 제발 도와주세요..

최근에도 가난한 사람들 도왔고 그 사람들을 위해 기도했던 저를 기억해 주세요. 저 진짜 착한 년 아니지만 그러려고 진짜 애썼어요. 그래야 될 것 같은 마음의 따름을 따라왔어요. 선한 능력은 오직 하나님이 주시는 거니까. 그렇지만 하나님 저는요? 저는 언제까지 이렇게 가난하고 불안해야 하나요. 이제는 전보다 먹고 살 수 있는 환경이 놓이긴 했지만 나는 어린 시절 그 흙 묻은 사탕을 주어먹던 멍청하고 불쌍한 어린아이의 마음으로 재산을 바라봐야 하나요. 하늘에 복이 쌓인다는데 제 자리는 있나요. 제 곳간엔 쌀 한 톨도 없는 건 아닐까요? 제게 천국의 자리라는 것은 존재하는 것일까요?

최근에 하나님이 제 죄 때문에 십자가를 통해 돌아가셨다는 것을 믿게 됐어요. 그냥 손수건이 젖듯이, 가랑비에 옷이 젖듯이 천천히 스며들었지요. 그건 어떤 수련회도 아니었고 그냥 조용히 찬송을 통해 다가왔어요. 모두가 잠들었던 그 밴에서 제게 속삭이셨던 것처럼 아무도 모르게 그렇게 주님 다가와 주셨죠. 저는 너무 행복했어요.

하지만 지금의 저는 너무 불행해요. 막막하고요. 모든 게 다 돈 때문이에요. 돈만 있었다면 이런 고민하지 않았을 거고, 이 일이 잘못된다고 할지라도 돈이 있으니까 조금은 마음 편하게 있을 수 있고, 어떤 사람이 무례하게 나의 모습 보고 비난해도 돈을 가지고 운동하고 필요하면 성형도 조금 더하면 되니까 나는 그 모욕을 견딜 수 있어요. 근데 돈보다 높으신 하나님은 왜 돈을 제게 허락하지 않으신가요. 그때 300만 원도 주셨으니까 이번엔 500억 주시면 안 돼요? 전 정말 그 돈이 필요해요. 정말이요. 제게 꿀송이를 맛보듯 돈을 쓸 수 있게 해주세요. 건강도 되찾고 우리 가족이 행복함을 되찾을 수 있는 계기가 될 것만 같아요. 제발이요.

오늘도 수업을 들었는데 전 도무지 한 소리도 못 알아들었어요. 선생님은 쉬운 거라고 하셨는데 전 그것조차도 어려워요. 그렇게 오늘도 저는 이 학원이 끝나면 울면서 집에 돌아가겠죠. 힘든 낯으로 돌아가겠죠. 음악을 들으며 버티려고 애를 써볼 거고요. 그렇게 지하철을 타고 또 추위에서 버스를 기다리며 고양이 생각을 조금 할 거예요. 둘이 싸우고 있으면 안 될 텐데. 병원도 데려가야 하는데, 그런 것들요. 그런 생각을 좀 하다가 고양이 발톱 깎을 생각도 하고, 남편이 있었으면 좋겠다 동거인이 있으면 좋겠다 생각을 하면서 쓸데없는 트윗이나 카톡카톡을 남발하고 있을 겁니다. 그러다가 집 가면 대충 씻고 나와서 밥을 허겁지겁 먹거나 요리를 하고 난 뒤에는 이불 위에 드러누워 씨발씨발을 외치며 오늘 내 하루가 거지 같음을 돌아보고 공부는 덮고 다시 티브이를 켤 겁니다. 인생이 이래요. 고양이 몸 걱정은 하면서 또 내 걱정은 덜 하기도 하죠. 저는 고양이가 죽고 난 다음에 죽고 싶다는 생각을 조금 하게 됩니다. 이런 제가 건강하게 90살까지 살게 된다면 그건 아마 하나님이 살아계시다는 증거가 될 거라 생각해요. 왜냐면 나는 사라지고 싶은 존재고 몸을 마구 굴렸던 사람이라 그걸 주변에도 아니까 그게 증거가 될 거라 생각해요. 나는 엄청 행복해질 거고요.

이런 편지를 쓰는 건 너무 답답해서 그랬어요. 하나님이 500억 줄지 안 줄지 솔직히 저는 몰라요. 그냥 간절히 바랄 뿐이에요. 500억을 주면 내가 다 버릴 테니까 제발 달라고 떼쓰는 거, 맞아요. 제가 원래 바라는 년이 아니잖아요 하나님. 그냥 다 포기하는 년이잖아요. 하지만 돈 주시면 저를 도와주신다고 생각할 테니까 제발 500억 주세요. 제발요. 제발... 부탁해요 하나님.. 빚도 갚고 아빠도 해외로 보내드리고 엄마는 밭 일구면서 사실 수 있게, 엄마 도와줄 고용인도 붙일 수 있게, 저도 제대로공부할 시간 가질 수 있게 돈 좀 주세요. 돈 받으면 코딩 공부하면서 상담 자격증도 꼭 따서 목사님, 사모님 도와드리는 상담사가 되도록 할게요. 하나님 제발 간절히 부탁드립니다. 제발 큰돈을 허락해 주세요.. 제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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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내겐 그 상처가 치유되지 않았다.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하나님은 누구나 다 사랑하시잖아요. 저 사람이 누군가를 죽였어도, 그 죄를 미워해도 그 사람 자체는 사랑하시니까. 나를 아프게했던, 혹은 아프게하고 고통스럽게 만드는 사람또한 사랑하기에 나도 그래야 한다는 강박과 고통으로 나는 계속 힘들어했다. 하지만 오늘 새벽기도 영상을 들으며 학원으로 가면서 작은 깨달음을 얻었다. 그래. 나도 그랬지... 하는 것. 이미 알고는 있었다. 나도 내 어린시절이 막 대단한 것도 아니었고 하나님을 먼저 사랑했다는 게 아니었다는 것. 나는 나를 보잘것없이 여기고 미워해도 하나님은 나를 사랑하셨고, 이기적이고 모순적인 태도는 죄로 여겨도 그저 '나' 자체를 사랑하셔서 나를 만나러 오셨다는 것. 그 감사를 잊었던 게 언제부턴지.. 사실상 종종 잊는 것만 같다.

 

ㅁㅎ 문제와 막내를 곰곰이 생각해 보면서 내가 그들에게 정이 떨어져 버린 계기를 되짚어보니 여차저차 결국 '돈'문제였다. 여러 가지의 계기가 있었긴 했다. 하지만 이기적인 행동과 더불어 돈 문제에 나는 유독 예민했던 것 같다. 쉽게 돈을 빌려달라는 친구와 그렇게 똑같이 행동하는 동생. 내가 해주었던 것을 기억하지 못하고 당연시 여기는 행동에 대한 분노.. 어쩌면 유다도 이런 모습이지 않았을까. 오랫동안 예수님을 따라다녔고 사랑했겠지만, 자기가 맞다 생각하는 관념에서 벗어난 여인의 행동을 지적하자 내가 사랑한 예수님이 내게 모든 사람 앞에서 내 행동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말했을 때. 나도 과연 예수님을 향해 미워하는 마음을 갖지 않을 수 있을까. 게다가 빵을 떼면서 '나를 저격하는 예수님'을 보며 나는 과연 울컥하지 않을 수 있었을까.

 

결국 사탄의 생각이 들어와 목을 매고 죽을 수밖에 없었던 그의 운명은 어쩌면 남의 것이 아니라 내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유다는 그저 노래 거리, 단순한 멍청이가 아닌 우리의 모습이기도 한 것 같다. 아니, 내 모습이겠지. 가슴이 울컥울컥 꺼린다. 나 또한 이유 없이 사랑받았음을 잊어서는 안 되는데.. 이미 머리로 알고 있는 사실이 마음까지 들어오기가 쉽지 않은 것 같다. 이게 성령님이 주시는 감동이겠지. 고통 가운데에서도 내 모습을 바라보게 하시고 주님이 주신 은혜를 기억하게 도와주시는 성령님께 늘 감사하며, 성령님을 믿으면 예수님을 믿는다 하셨던 그 말씀처럼 나는 오늘도 힘차게 하루를 살아가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주님. 사랑하는 마음을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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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도 내 말을 들어주지 않는다, 라는 아빠와 대화한 것을 엄마가 옆에서 들으시고 다음 날 저런 말을 하셨다.

동생이랑 싸웠다.
내가 시비 걸어서 그런 거다.
냄비엔 물이 끓고 있었고 나는 그 야심한 밤 세 형제들과 깨어 있었다. 나는 자연스럽게 내 것을 뺏어갈 거 같아서 동생을 위해 계란 두 개를 더 넣었다. 막내는 그때 다가와 제 것도 넣으라고 했다. 나는 이미 넣었다고 했었다. 그때까진 아무 문제가 없었다. 그런데 나는 나도 모르게 본심을 내뱉어버렸다. 사실 진짜 이러는 거 싫다고. 맨날 나만 해줘야 하는 게 정말 스트레스다. 그냥 이렇게 혼잣말을 해버렸다. 근데 그걸 너무 크게 말했고 본심으로는 동생이 듣고 '달라고 말 안 했으면, 아니면 깨닫기라도 했으면, 아니면 고맙다는 말이라도 좀 했으면' 했던 거였는데. 동생은 화가 났는지 나한테 "그래서 내가 넣는다고 했잖아. 뺐어가는 것도 아닌데 말투 왜 그렇게 띠꺼워?" 라고 말하기 시작하면서 그 이후로는 쌍욕을 박았다. 나도 마냥 순순하게 말하는 사람은 아니어서 본심을 감추고는 "아니, 내가 그렇게 깨달았다고. 난 어릴 때부터 네가 정말 싫은가 보다, 하고. 네가 나한테 거짓말 치고 상처 줬던 그때부터." 이렇게 말했다. 그랬더니 그 이후로는 막내가 대폭발해서 정신병자 새끼, 뭔년, 쌍년 얘기를 하다가 새벽 3시에 집안이 전부 울리게 고함을 쳤다. 부모님이 주무시고 다른 집 사람들도 자는 것을 전혀 배려치 않고 그냥 소리를 냅다 질렀다. 나는 너무 깜짝 놀라 어깨가 들썩였고 그때부터 동생이 나를 때리려고 오는 것을 잠에서 깬 아빠가 나와 막았다.

나의 스트레스 곡선. 지난 일기들을 읽으면서 영영 이 틀에서 벗어나지지 않는 건가 싶었다.

누가 봐도 난 잘한 게 없다. 첫째라면 막내를 당연하게 예뻐하고 귀여워하고 사랑해야 하는 법인데. 나이 차이가 9살이나 나면 당연히 뭐라도 잘해주고 싶었을 거다. 싶어 해야 하는 게 당연하다. 하지만 나는 어릴 때 막내 손버릇이 나빠질 때 유독 상처를 준 사람이다. 그 당시 나도 학교생활로 너무 힘들었고, 정신과 상담이 필요한 수준이었는데 부모님은 나를 챙겨주지 못하셨고 막내는 당연히 돌볼 여력이 되지 않았다. 그래서 막내한테 나의 상처에 대해서 나처럼 상처받지 않기를 바라고 좀 더 튼튼하게 자라기를 바라면서 했던 스스로의 말, 그 말 때문에 막내의 성정이 이렇게 되었나 싶다. 하도 돈을 훔치고 내 돈도 훔쳐서 막내를 붙잡고 했던 어렸을 때 나의 말은, '막내야. 정신 차려. 가족들도 어차피 남이야. 네가 계속 이렇게 훔치고 피해를 주면 우리도 너를 계속 돌봐줄 수가 없어.'라고 했던 것 같다. 사실 그때 나도 가족을 남처럼 생각했으니까.
 
그래서 그런지 막내는 가족들을 다 남처럼 대한다. 근데 정말 남처럼 피해는 안 주는 건 아닌, 돈이나 먹을 것들 같은 것들은 전부 빌려 쓰고 가져가면서 더 내놓으라면서 자기 것만은 절대 주지 않는다. 그것은 물건을 포함한 시간까지... 어쩌면 남보다 더한 강도가 아닌 건지. 근데 나는 말할 자격 없다. 막내의 힘든 시절에 상처를 준 사람이니까. 그 애가 기억하지 못한다 해도 내 기억에 남은 것은 하지 말아야 할 말이라는 것을 어린 내 머릿속에서도 기억하고 있다는 뜻이니까. 부모의 무관심은 내 마음속 뿌리까지 썩게 만들어서 그 썩은 내를 동생에게 묻혔고 그를 붙잡아 함께 썩게 만들었다. 나의 유년 시절 상처를 대물림한 거나 다름없다.
 
그래서 나는 스무 살이 되고 종종 막내에게 편지를 썼다. 미안하다, 사랑한다 같은 여러 말들을.. 편지가 아마 과장하면 50통도 되는 것 같다. 툭하면 쓰고, 툭하면 사과하고... 그것들은 그 애의 마음에 박히지 않은 것 같다. 회사 막내한테 잘해준다고 편지와 선물 줬어도 지낸 3년 동안 내 편지 기억 안 난다는 말 들었던 것처럼. 다 버렸겠지. 그 애의 빚을 갚기 위해서 줬던 200만 원도 더러워서 갚겠다 본인 말로는 그랬지만, 아직도 돈을 내게 요구한다. 돈도 벌지 않는 백수인 나에게..
 
동생을 미워하기 시작한 건 그때였던 것 같다. 마냥 귀엽던 막내가, 학교에서도 왕따 비스름한 것을 당했다 얘기 들었을 때 얼마나 화가 났던지. 심지어 애들이 막내가 돈을 다 훔쳤다고 했을 때 나는 아니라며 더 큰소리를 냈다. 왜냐면 그 아픔을 아니까. 소외당한 것만으로도 벅찬데 돈까지 훔쳤다고 내몰렸을 땐 아이가 얼마나 힘들어할까, 그런 생각뿐이었다. 나는 그래서 무조건 막내 편만 들었다. 하지만 아빠가 결국 막내가 훔쳤다고 결론을 내려버리고, 막내는 그 이후에 내가 밖에서 귀엽다 머리 쓰다듬으면서 떡꼬치를 사주고는 집에 들어가는 길에 "막내야. 내 돈은 안 훔쳤지?"라고 말했는데 해맑게 웃으며 "응."이라기에 이쁘다, 이쁘다 하고 왔는데 결국 집에 작게 모아둔 저금통이 털린 걸 보고는 배신감에 용서할 수가 없었다. 아무도 네 편이 아니었을 때, 나만은 네 편이었는데...
 
그 당시 막내는 미쳤는지(이런 표현 괜찮은 건가 싶었지만 그땐 그렇게 느꼈다.) 엄마 돈, 외삼촌 유품, 반지, 아빠의 돈, 내 돈, 둘째의 돈, 학교에서까지 돈을 훔쳐 가며 어딘가에 마구 써댔다. 초등학교 고학년 때부터 막내는 방황을 시작했다. 아마 학교에서 있었던 일이 엄청나게 큰 영향을 줬던 것 같은데, 막내의 그 시절에 대해서 아무도 그를 달래줄 수 없었다. 그게 아마 큰 상처였던 것 같다. 지금은 나라도 그랬을걸,이라고 말은 하지만, 그때의 나는 나도 너무 힘들었다. 나도 왕따를 당하고 있었고 그걸 말하지 못하고 있었는데다가, 아빠도 엄마도 개인 사정으로 힘들었기 때문에 우리를 물질적으로는 안전하게 키우셨지만 내면적으로는 방치하고 있었다. 우리에겐 우리를 도와줄 사람이 없었다.
 
나는 막내가 옳은 길을 가길 원했다. 남들과 똑같이 살았으면 했다. 하지만 우리 가족은 뭐가 문제일까. 막내부터 나까지. 정상인이 아무도 없다. 엄마 또한 다리만 좋으면 날아갈 사람처럼, 아빠가 마치 날개옷을 훔쳐 간 사람처럼 요즘도 티비만 보고 그 영상에 산이라도 나오면 좋겠다, 좋겠다 하면서 과거를 기억한다. 그리고 아빠 때문에 힘들었던 때를 또 말씀하신다. 난 그것을 보면... 그냥 가족이라는 게 없었으면 좋겠다. 그런 생각을 잠깐 한다. 그냥 누가 날 먹여주고 키워주는 햄스터로 태어났으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 생각도 하고.
 
지금도 나는 너무 힘들다. 블로그 첫 글을 썼을 때와 달리 마음도 연약하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생각하는 요즘, 그런 일상들을 보내고 있다 생각하지만 자꾸만 자극되는 일들이 생긴다. 막내 일도, 또 회사 나가고 연락 끊었던 원수 같던 동료의 안부도, 친구의 결혼 청첩장 연락도.. 그냥 요즘 되돌아보면 내가 너무 예민한 탓이니 나만 없으면 되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을 종종 한다. 아름답게 그려진 그림에 나 같은 점이 묻어버린 느낌이다. 나만 없었으면 우리 가족 행복했을 텐데, 회사에 내가 아닌 좋은 사람이 있었으면 얘도 그렇게 엇나가거나 못된 행동을 하지 않고 진정한 동료가 뭔지 알려줬을 텐데, 친구 A도 다른 친구들과 헤어지지 않았고, 모두들 친구 A의 결혼식에 참여하고 나 또한 적극적으로 더 가깝게 지낼 수도 있었을 텐데. 같은...
 
블로그 첫 글을 읽으며 나는 내 일기에 대한 것을 아빠 엄마한테 공유하고 싶었다. 이유는 모르겠다. 근데 아빠한테 막상 들려주고 반응을 받으니, 그제야 나는 알았다. 나는 위로받고 싶었구나. 그리고 응원받고 싶었구나... 일기를 아빠 앞에서 읽으면서 내심 떨렸는데, 아빠는 듣다가 내가 변화된 부분을 강조하셨다. 그건 내가 원한 반응이 아니었다. 나는 또 일기장을 들고 거대해진 아빠 앞에서 잘했다, 잘못했다 지적을 당하는 어린 소녀가 되어있었다. 아빠는 판사가 되어있었다. 나는 또 부끄러워졌다... 그 이후로 그 감정에 대해 찜찜해서 도대체 내가 왜 이럴까 싶어서 혼자 메모장에 아빠한테 듣고 싶었던, 내가 아빠라면 나한테 어떻게 말해줬을까라는 상상을 해보며 글을 써봤더니 알게 됐다.

아. 나는 위로받고 싶었구나... 하는 것을.

더보기

<내가 아빠라면 이렇게 말해줬을 텐데, 하는 편지.>

 

 

다영아. 글을 듣고 나니 네가 참 많이 힘들었다는 게 느껴지네.
지금은 그때만큼 못하다는 네 말도 그렇고, 아빠도 그게 뭔지 알아.
아빠도 하나님을 믿지만, 방황했던 과거가 있었잖아.
그래서 다영이 너를 이해해. 아빠도 참 많이 힘들었거든.
이때를 들으니까 얼마나 네가 영적으로 성숙했는지, 하나님과 얼마나 가까움이 느껴졌는지
그 감동과 함께 지금의 네 영적 상태에 대해 안타까움도 함께 들었단다.
다영아. 힘들지. 괜찮아. 아빠를 봐. 아빠도 그랬지만 지금은 하나님과 늘 함께하잖아.
늘 기도하며 애쓰는 거야. 아빠가 다영이를 사랑하는 것보다 하나님은 다영이를 더 사랑하셔.
늘 네가 돌아오기를, 예배의 자리에 힘쓰기를 기다리고 계실 거야.
아빠도 네가 회복되기를 늘 바라고 있고.
괜찮아, 다영아. 넌 바로 설 수 있어. 하나님이 네 곁에 계시잖아.
그걸 믿고 기도하면서 오늘 하루를 바르게 살아가면 돼.
사랑한다 다영아. 아빠는 너를 위해 늘 기도해. 잊지 마.
예수님은 매시간 매초 너를 바라보고 계시는 것도.
사랑해. 힘내자, 다영아.

 
쓰면서 나는 훌쩍였다. 아 나는 왜 이렇게 바보 같은가... 왜 맨날 그때의 감정, 그러니까 행동의 진정한 뜻을 왜 스스로 알지 못하지 싶었다. 맨날 이렇게 하고 나서 후회하는 걸 보면 그냥 모든 순간엔 입을 다물고 상황을 회피해야 하하는 걸까. 그런 생각이 든다. 아... 기도문이나 쓰고 주문받은 그림이나 그려야겠다. 피곤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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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딱히 별일이 없었다. 한 것도 없고. 산책도 하지 못했다. 선생님과의 약속을 지키기가 어려울 것 같다. 일주일에 3번은 밥 먹고 산책하기로 했는데. 발목도 나갔고.. 그 핑계로 복근 운동도 하나도 하지 않았다.

티비에서 보면 아픈 사람들도 열심히 운동하던데. 난 왜 그럴까? 난 왜 이렇게 끈기 없는 사람인 걸까? 왜 나는 하지 말아야 하는 행동들을 하는 걸까? 나는 왜 이렇게 더러운 짓을 반복하는 걸까? 이 글을 쓰며 말하는 과정에서도 나는 눈물이 난다. 나는 태어나지 말았어야 했다. 삶에서, 삶으로 예배드리는 삶은 나에게 너무 먼 꿈과 같다.

귀여운 춘식이. 빨리 고양이 키우고 싶다.


이전에 쓴 일기들을 보는데 '나의 곁에 계신 성령님'의 음성에 감동받아 쓴 문장을 보았다. 지금의 나는 절대 들을 수 없는 목소리다. 왜냐하면 난 거룩함과 너무 거리가 멀기 때문이다. 해야 할 것도 많으면서 하지 않고, 정말 중요한 게 뭔지 알면서도 다 잊어버렸다. 내가 왜 회사를 다니는지, 내가 왜 혼자서 살게 됐는지, 내가 왜 태어났는지, 내가 왜 아팠어야 했는지 나는 정말 다 까먹은 사람처럼 살아가고 있다. 그게 너무 부끄러운데 어디다 말할 곳도 없고 이제 내 기도는 쓰레기통에 처박힐 것을 아니까 그냥 눈물만 난다.

내가 내 죄를 뉘우치고 하나님께 빌면 내가 다시 돌아갈 수 있을까? 난 근데 놓기가 너무 싫다. 놓을 힘이 없다. 도대체 언제까지 이러고 살 건지 내 스스로가 너무 싫다. 하나님은 왜 나를 지켜만 보고 계실까? 나도 나를 죽이고 싶은데. 나도 내가 사라졌으면, 아니면 완전히 바뀌길 원하는데 나는 의지가 너무 약하다. 하나님을 신뢰하지도 사랑하지도 않는다.

8-30 /무제 / 스마트폰 그림


값진 것을 받아도 그것을 쓰레기통에 던지고, 새 옷을 입혀도 진흙탕에서 구르는 나는 멍청한 돼지나 다름없다.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괴로워하고, 외로워하는, 그 이유가 성경에 다 쓰여있는데 나는 성경 책을 안 읽는다. 찬양을 부르지 않는다. 기도도 하지 않는다. 내가 바뀌길 원하면서 바뀌려고 정작 행동으로 옮기지도 않는다.

발목이 너무 아파도 하나님께 낫게 해달라고 기도할 수도 없다. 왜냐면 나는 배신자니까. 그 사랑을 발로 차고 나온 예수님을 팔아버린 유다보다 더 못난 놈이니까. 정말 사람답게, 하나님의 사람답게 살고 싶은데 나는 왜 이렇게 자꾸만 무너질까? 이게 원래 내 모습이라서 난 여기서 벗어날 수 없는 걸까? 하나님께 도와달라고 하고 싶다. 모든 중독에서 벗어나고 싶다.



*9/1 감사한 일
1. '내가 있잖아' 그 말 보게 된 것. 다시 깨달은 것.
2. 맛있는 점심 먹고 기운 차릴 수 있게 된 것.
3. 아침에 차를 얻어 탈 수 있고 병원도 가게 된 것.
4. 나를 걱정해 주는 사람들이 (그냥 말이라 해도) 있다는 것.
5. 저녁 적당한 선에서 해결하고 잘 참을 수 있게 된 것. 폭식 X
6. 일에 대한 스트레스가 적었던 것.
7. 보이지 않아도 연락 없어도 내게 친구들이 곁에 있다는 것.
8. 내가 내 발이 너무 부끄럽고 당황해서 급하게 준비하려고 할 때마다 사람들이 '천천히 하라'라고 얘기해 준 것.
9. 음식 시켜놓고 급하게 가야 하는데 다행히 의사 진료 건너뛸 수 있었던 것.
10. 따듯한 물로 목욕할 수 있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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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리치료 받는 중. 자꾸만 부끄러워지는 이유는 뭘까? 내가 너무 창피해.

 

오늘도 딱히 일 없는 하루를 보냈다. 어제저녁에 엄마랑 태그 42에서 시킨 샌드위치를 나눠먹었는데 엄마가 무척 마음에 들어 하셨다. 보통 샌드위치를 떠올리면 길거리에서 양배추가 잔뜩 들어간 것을 떠올리셨다고 하는데, 요즘은 달달하게 나오기도 하고 빵이 꽤 고급 져서 풍미가 깊은 길거리 음식이 되었다. (예를 들면 이삭토스트.)
사진을 못 찍어서 좀 아쉽지만, 오늘 일과와 생각을 좀 적어보고 싶다.

지금은 야근을 하고 있다. 일요일 일을 좀 했더니 오늘을 생각보다 무난하게 하루가 흘렀다. 차장님이 안 계시니까 그 자리를 채워야 해서 그게 조금 피곤하고 고되지만, 웃는 일도 있었고 기분이 너무 좋은 하루였다. 물론 지금은 또 기분이 차분해지는 느낌이지만. 시간 놓칠세라 약을 한줌 삼키고 다시 이곳에 앉았다.

 

이런 글들을 쓰고 있다 보면 내가 하고 싶은 말이 도대체 뭔지 스스로에게도 궁금해진다. 두서없는 말들, 떠다니는 활자들. 차라리 책 한 권을 더 읽고 있는 게 낫지 않을까 생각하면서 영양가 없는 글들을 마구 써내린다. 나도 sns 친구처럼 음반이라도 낼 능력이 있으면 좋겠는데 이것저것 너무 많이 미뤄두고 지내고 살고 있다.

 

흰머리오목눈이. 정말 귀여운 새다.

 

가슴이 저릿한데 왜 그런 걸까. 친구의 말대로 부정맥인 걸까? 아니면 심장마비의 예고를 때리는 걸까. 요즘 자다가 경련 비슷한 걸 겪는다. 수면 놀람증이라고 하던데. 정말 그런 게 있는 걸까. 친구가 말하길 내가 자다가 앉는 습관이 있다고 했다. 아마 예전에 앉아서 자던 것 때문에 그런 걸까. 요즘 모든 게 신경 쓰이고 피곤하고 힘들다. 신경을 안 쓰려고 할수록 더 신경 쓰인다.

 

서른도 아닌 서른하나. 내년엔 벌써 서른둘이 된다. 그런데도 나는 내 생에 뭔가를 해낸 게 없는 거 같다. 일종의 푸념이지만 일기장 아닌 곳에서 이런 얘기를 어떻게 할까. 나 자신이 너무나 부끄럽다. 자격증도 졸업도 제대로 하지 못한 채,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을 하면서 이렇게 지낸다는 게. 이십대도 아니고 서른하나. 서른하나... 사는 게 너무나 부끄럽다. 그런데도 살아가고 있다. 죽는 게 쉬운 게 아니니까. 다만 너무 오래 사는 기분이 든다. 이렇게 혼자 살다가 늙어 죽으면 내 무덤 만들어줄 사람 하나 없을 텐데. 혼자 장례 준비를 미리 하겠다고 해놓고, 리스트를 정리해놨으면서 하나도 진행하지 못하고 있다. 죽음이 마치 멀리 사는 친구처럼 기억은 하지만 현재 삶 때문에 종종 잊어버린다고 해야 하나..

 

죽기 전에 하고 싶은 것들, 해야 할 것들에 대해 버킷리스트라도 만들어야 하나. 오늘따라 왜 이렇게 무력할까. 해야 할 것들이 많은데. 모든 게 귀찮다. 잠만 자고 싶어. 오늘따라 너무 부정적이라서 감사일기도 제대로 쓸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이 든다.


*8/30 감사한 일들

1. 여덟 해까지 잘 보내고 있는 것.
2. 쿠우쿠우 갈 수 있었던 것. 가서 쓸 카드가 있었던 것도.
3. 신나게 웃었던 시간을 보낼 수 있었던 것.
4. 일하면서 다치지 않고 (발목 통증도 덜하고) 보낸 하루였던 것.
5. 엄마가 아침에 차를 태워주신 것. 회사까지 데려다주신 것.
6. 편도결석 다 튀어나온 것. 목 붓거나 열나는 일이 안 생긴 것.
7. 내가 자다가 앉아있을 때 눕혀주는 사람이 있었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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