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호야, 그래 주먹을 쥐거라
눈물일랑 손등으로 씩씩 씻고
이제 그만 슬픔을 거두거라
자식 두고 죽은 놈은 나쁜 놈이라고
어른들은 아버지를 끌어 묻으며 그렇게 말했지만
돌아서서 삽날을 꽂으며
왜 동네 어른들이 하늘을 올려보고 땅을 내려보는지
어디에 대고 어른들은 그렇게 무서운 욕을 해대는지
너도 자라면서 깨닫게 될 것이다
이렇게나 젊은 일손이 모자라는 산골짝에서
끝끝내 살아 지켜야 할 이 땅의 젊은 네 아버지가
파릇파릇 자라오르는 어린 모와 삭갈던 논을 팽겨쳐 두고
아직 거두지 않은 출렁이는 보리밭 바람에 맡겨두고
도토리 같은 어린 너희 형제들 남겨둔 체
어쩌면 그리도 황망히 목숨을 거두어 가고 마는지
노랗게 씨가 여무는 채마밭에 서서
성호야, 네 눈물을 마주 바라보고 있을 수가 없구나
우리가 여기서 태어났고 살아가야 할
이 땅의 이 붉은 흙 위에서
땀 흘린 만큼 우리는 웃음을 돌려받지 못하고
정직하게 노동한 만큼 보람이 거두어지지 않는
이렇게 비틀려진 답답한 논두렁길에서
아버지는 농약을 들이마시고 까맣게 살을 태우며 죽어갔지만
성호야 너는 절대로 울면서 이 땅을
떠나지 말아야 한다
팔뚝이 굵어지고 철이 들면은 격투기라도 가르쳐
널 약하게 키우지 않겠다고 늘상 그렇게 말하다가는
그리 몰강스럽게 가고 만 그런 약한 아버지는 되지 말고
삽날같이 가파르게 살아 이겨 이 땅을 지켜야 한다
넘실대는 저 보리밭처럼 가슴 설레는 나이가 되면
먼 도시로나 떠나갈 일부터 생각지 말고
너는 꼭 이곳에 남아 눈물로 씨뿌린 것들을
기쁨으로 거두는 이 땅의 주인이 되거라
어금니 사려물고 주먹 움켜잡고 네 삶을 지키거라
피땀 흘려 일하고 목청껏 노래하며
네가 씨뿌린 것들을 지키거라.
채마밭에서서 / 도종환